이 책은 소설이지만 저자의 실제 경험이 낱낱이 기록돼 있다. 『팽』을 보면 백시종 작가와 이 前대통령,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얽히고설킨 여러 인물들의 관계도가 상세히 그려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그러나 세상에 드러나지 않고 꽁꽁 숨겨졌던 비밀스런 이야기들을 공개한다.
그 옛날, 저자가 쓴 책 중에 『돈황제』라는 기업소설이 있다. 책은 동전의 앞·뒷면과도 같은 한 재벌그룹 회장의 인간성을 적나라하게 폭로해 출간되자마자 엄청난 부수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작가의 각고 끝에 완성된 노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압박에 눌려 이내 세상 속에서 완벽하게 사라졌다. 소설 『팽』은 이에 대한, 즉 필화사건의 전말 또한 소상하게 밝힌다.
이 前대통령의 회고록과 소설 『팽』은 같은 날 출간되었다. 그리고 두 서적은 베스트셀러로서 서로의 뒤를 맞물고 이어지는 듯 했다. 이 같은 까닭으로 『팽』이 더더욱 화제가 되고, 꽃이 피다만 이전 작품까지 재출간 되어 독자들 사이에서 널리 회자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 두 사람이 함께 일했던 10년이라는 긴긴 시간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또 하루아침에 파면되어 『돈황제』를 쓰게 된 백시종 작가의 그 전‧후 사정은 어떠했는지, 소설 『팽』이 모든 사실을 알려준다.
# 본문 속으로
명광그룹은 내가 석 달 전만 해도 근무하던 직장이었다. 내 직책은 명광그룹 홍보실 제3차장이었고, 그날 아침 나는 당당히 홍보부장으로 승진한 몸이었다. - p.006
명광그룹의 블랙리스트로, 요주의 인물로 따로 관리되던 수요회 회원들의 은밀한 지원을 받아 완성한 내 소설이 『돈황제』라는 제목을 달게 된 것도 기실은 S형 덕분이었다.(…중략…)나는 S형의 예리한 통찰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돈황제’ 속에 숨어 있는 네 가지 이미지 자체가 패러디의 극치였기 때문이었다. - p.198~199
정말 출판사의 좁은 응접실이 꽉 차 있었다. 내가 마지막 참석자였다. 분위기는 무거웠다. 착 가라앉아 있었다. 자리 잡은 사람 모두가 피워 대는 다배연기도 여느 때와 달리 눅눅하기 짝이 없었다. 얘긴즉슨, 엄청난 속도로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던 『돈황제』가 흡사 전기 나간 정미소처럼 갑자기 클클 크르르윽 괴기한 소리를 내며 끊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 p.228~229
이번에는 사회면 사건 기사가 아닌, 신문의 얼굴인 사설이었다. 1989년 11월 18일 자였다. 제목은 ‘『돈황제』와 어느 재벌의 광고 봉쇄’였다. - p.234
뭐라구?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던 엠비유가 기름 묻은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뒤틀다가 어느 날 아침, 덜컹 그것도 적진인 와이에스 진영으로 귀순을 해버렸다구? 왕득구 회장은 분개하다 못해 치를 떨었다. 전신이 마비증세가 걸린 것 같았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제 놈이 감히…… 어떻게 나를…… 능지처참할 놈 같으니…….” - p.269
[뉴스토피아 = 이애리 기자 / aheree@newstop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