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럼에도 여행』 노경원 작가와 나눈 이야기
[인터뷰] 『그럼에도 여행』 노경원 작가와 나눈 이야기
  • 김미주 기자
  • 승인 2014.05.16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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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숙방 하얀 벽엔 세계 지도와 엽서로 가득했어요.”

여행. 우리는 항상 일상에서 떠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막상 떠나려고 하면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아서 늘 망설이게 된다. 그러다 ‘다음에 가지 뭐’하며 설렜던 마음을 진정시킨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여행’을 떠난 사람이 있다. 바로 노경원 작가. 대학생이 되고 나서 매 학기 성적우수장학금을 받으면서도 혼자 힘으로 12개국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그런 그녀를 두고 ‘풍족한 집안이겠지?’, ‘시간이 많은 사람이겠지?’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아니다. 그저 보통의 우리보다 여행을 더 열렬히 사랑한 것뿐이다. 무언가에 목적을 두고 열렬한 마음을 품는다는 것. 그것은 우리의 보통 인생을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Q. 여행, 이 두 글자만 봐도 마음이 설레는데요. 작가님께서는 책에서 ‘여행’을 ‘꿈’으로 표현하셨어요. 꿈이라 하면 반드시 이루고 싶은 간절함이 느껴지는데 작가님의 그런 간절한 마음이 어느 정도였는지 궁금해요.
A. 어린 시절 꿈꾸던 ‘여행’은 어렴풋한 호기심과 막연한 이상에 불과했어요. 하지만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는 여행이라는 단어가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이 구체적이고 강렬하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더 많은 것을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그 간절함도 커졌던 것 같고요. 정확한 수치로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작은 하숙방의 하얀 벽을 세계 지도와 엽서로 빼곡히 채울 만큼 열정적이었답니다.

Q. 제목 중 ‘그럼에도’에서 작가님의 여행에 대한 의지가 돋보이는데 작가님께서 그럼에도 여행을 선택하기 위해 어떠한 것들을 포기하셨는지요?
A. ‘가능할 지도 모르는 미래’를 포기해야만 했어요. 여행을 다니지 않고 꾸준히 저축했다면 얻을 수 있었을 ’미래’말이지요. 작은 중고 자동차 정도는 살 수 있었을 테고, 학자금도 많이 줄어 있었을 텐데, 결국 저는 그 미래를 포기했던 셈이지요.

Q. 대한민국 대다수의 사람들이 ‘여행’하면 가장 크게 고민하는 부분이 바로 경제적인 이유일 거예요. ‘이 돈이면 무엇을 할 텐데…….’란 갈등 말이죠. 이 책에서 작가님께서도 이와 같은 고민을 하셨지만 후회는 없다고 했어요. 그 정도로 여행이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건가요?
A. 글쎄요. 자신 있게 답을 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제게 있어서의 여행은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경이로운 경험이었지만, 그걸 일반화할 수는 없잖아요. 우리 모두 제각각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나 가치관, 인생의 방향이 너무나 다르므로 누군가에게 제 삶의 방식을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같은 맥락으로 다른 이의 삶을 마음대로 재단하고 평가할 권리 또한 없고요.

Q. 스무 살 강화도에서 ‘선택의 중요성, 선택에 대한 책임’이란 교훈을 얻으셨는데 그 이후에 여행하면서 기억에 남는 깨달음이 있다면요?
A. "아무리 꼼꼼히 계획을 세워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을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당연한 깨달음(?)일까요. 스무 살 무렵에는 여행을 하다가 길을 잃거나,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 손발이 떨려올 정도로 겁을 먹었고,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성격 자체가 묵직하고 안정감 있게 변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패닉이 돼서 하얗게 질리기보다는, 차라리 폭풍이 지나가기를 차분히 기다리자고 제 자신을 다독이는 편입니다.

Q. 미국으로 가기 전 ‘어떻게든 되겠지’란 문장을 보고 후훗~하고 웃음이 나왔어요. 저도 여행을 하면 ‘계획’보다는 ‘무작정’스타일이거든요. 그래서 ‘어떻게든 되겠지’하고 떠나면 정말 어떻게 되는 일이 많더라고요.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어떻게든 되겠지’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일까요?
A. 강점은 역시 위험 부담이 큰 만큼, 그 뒤에 오는 성취감이나 행운이 더 진하고 강렬한 희열로 다가온다는 점일까요? 더 높은 산을 오르는 산악인들, 더 깊은 곳으로 잠수하는 다이버들처럼요. 하지만 이런 무모함은 양날의 검과 같아서, 책임감과 분별력을 가지고 행동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특히 낯선 나라로 혼자 떠나는 여행 같은 경우는 그 책임감이 더 커지고요.

 

Q. ‘도대체 뭐가 그렇게 부끄럽고 어색한 거야? 어차피 오늘만 보고 안 볼 사이들인데.’ 맞아요. 여행은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나를 만나게 해 주죠. 여행 중 평소 내가 해 보지 못한 일탈 같은 것 있다면요? 궁금해요.
A. 일탈이라고 하니 어감이 조금 이상하지만,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듣고, 기도를 하는 거요. 저는 불교에 가까운 무교라서, 성당이나 교회에 가본 적이 거의 없거든요. 그런데 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워낙 웅장하고 유서 깊은 성당들이 많아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미사를 듣게 되고, 합창을 하고, 기도를 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전혀 다른 일상’이 새삼 즐겁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Q. 여행을 하면서 그곳이 정말 아름다워 마음이 울컥했던 적이 있어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해서요. 작가님께서도 이렇게 감탄한 여행지가 있나요?
A. 런던이요. 특히 겨울 저녁 해가 질 무렵, 템스강변으로 쏟아지는 일몰이 장관이었어요. 금빛으로 빛나던 고딕 양식의 건물들도, 강위에서 눈부시게 일렁거리는 오렌지 색 일몰도 전부 제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상의 한 단면인데도, 저는 그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아요.

Q. 여행은 그냥 가고 싶어서 가는 여행이 있고, 목적이 있어서 가는 여행이 있잖아요. 작가님께서는 둘 다 해 보신 것 같은데 그 둘의 매력 차이는 무엇인가요?
A. 제가 느낀 큰 차이점이라면 아무래도 ‘느껴 가느냐, 배워가느냐.’입니다. 여행은 많은 것들을 내 ‘가슴’속에 담아갔던 반면, 탐방이나 연구는 ‘머리’ 속에 차곡차곡 담아갔다는 느낌이거든요. 감성과 지성의 차이 정도로 보시면 될 것 같아요.

 

Q. 혼자 여행하는 것보다 어머니, 이모와 함께 여행하는 것에는 책임감이 따르죠? 그래서 조금 힘들어하신 것 같은데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 가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의 한 말씀 부탁드려요.
A. 어느 때나, 어느 순간이나 자기 자신을 다스리세요! 짜증을 부리거나하면 나중에 꼭 절치부심 후회가 되더라고요. ‘왜 그때 좀 더 다정하게 대하지 못했을까.’, ‘왜 한 번만 더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해 드리지 못했을까.’등등. 적어도 제 경험은 그랬던 것 같아요.

Q. 이 책을 쓰면서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아요. 소중한 사진들을 앨범에 차곡차곡 정리하는 기분이었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A. 아무래도 스무 살 때부터의 여행기를 정리하고, 압축하고, 삭제하고, 더듬어가는 과정이어서 그런지 그 지나간 세월 만큼의 우여곡절도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마침표를 찍고 나니 무척이나 시원섭섭했답니다. 몇 번이나 재독을 하고, 수정을 해도 늘 후회라는 감정은 밀물처럼 떠밀려오기 마련이라, 그저 지금은 예쁜 책을 한 권 더 선물 받았다는 충만함과 감사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부끄럽고 조악하고 미숙하기 그지없는 글이지만, 그래도 제 자신의 여행기를 이렇게 책으로 남길 수 있다는 기적을 행운으로 여기면서 말이에요. 출판사 관계자분들께도, 그리고 혹시나 책을 기다려 주신 분들께도 부디 밉지 않은 책이 되었으면 합니다.

Q. 작가님의 여행 인생이 담긴 책인데 어떤 것을 가장 중심에 두고 썼는지 궁금해요.
A. 여행에 관련된 책이지만 그 곳에서 느꼈던 감정의 흐름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듯 적어나갔어요. 그리고 한 문장 한 문장 진실 되게, 진심을 담아서 적어 내려가려고 노력했고요. 물론 책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이라 모든 것을 다 담을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제 자신에게 있어서만큼은 부끄럽지 않은 결과물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원고 작업을 했습니다.

 

Q. 앞으로의 삶이 기대되네요. 새로운 시작의 ‘꿈’은 무엇인가요?
A. ‘앞으로의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다른 이에게 툭 던지는 조언’ 만큼이나 두렵고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아무리 다듬고 정리해도 도저히 글자로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막연함과 아득함이 존재하고, 내가 지금 적고 있는 글에 대한 선명한 책임감도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막상 내일 하루조차도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는데, 미래의 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10년 정도가 흐르고 서른 중반에 접어들어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분야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게 아니라서, (오히려 지극히 평범한 범인에 가깝다 보니) 내게 주어진 한정된 삶 자체가 그 해답에 대해서 하나 둘씩 알아가는, 길고 긴 여정이 아닐까, 하고 생각 할뿐입니다. 너무 추상적이라서 눈살이 찌푸려질 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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