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돈에서 해방된 교회』 박득훈 목사의 이야기
[인터뷰] 『돈에서 해방된 교회』 박득훈 목사의 이야기
  • 김미주 기자
  • 승인 2014.05.09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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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교회는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한낱 꿈과 같은 것이 바로 돈이다. 꿈에서 억만 장자더라도 꿈에서 깨면 모든 것은 사라진다. 이와 같이 우리 삶에서 돈은 살아가기 위한 허울 좋은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거기에 집착하고 아등바등 살아간들 생을 마감할 때에는 그것이 얼마나 허무한 일이었는가를 알게 될 것이다. 특히, 주님을 모시며 영원한 삶을 꿈꾸는 기독교가 돈을 숭배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교회란 주님의 사랑과 진리를 실현해내는 신성한 공간이다. 하지만 한국 교회는 겉만 주님을 향하고 있으며 속내는 돈을 좇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쓰레기를 숨겨도 냄새가 나 결국에는 탄로가 나듯 지금 한국교회도 시커먼 속내가 쏙쏙 드러나고 있다. 이제는 냄새나는 쓰레기를 처리하듯 깨끗이 회개하고 처음 주님의 말씀대로 실천해야 할 때다. 사회가 아무리 자본주의 안에서 놀아난다해도 교회는 그 중심을 주님께로 맞추어야 한다. 돈이 주는 기쁨이 얼마나 오래가겠는가. 주님의 진리와 말씀을 받은 자의 기쁨에 가히 비할 수 없다.


 
Q.『돈에서 해방된 교회』는 어떤 책입니까? 이 책을 쓰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A. 책 제목이 집필 이유를 가장 잘 표현해준다고 생각해요.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과 교회개혁실천연대를 중심으로 한 교회개혁 운동에 참여해오면서 한국 교회 병폐의 맨 밑바닥엔 돈의 신, 맘몬이 도사리고 있는 것을 직시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돈이 교회를 자신의 영향권 아래 묶어둘 수 있게 된 것은, 분단, 한국전쟁,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한국 교회가 자본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옹호하게 되었기 때문이란 것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슬프고 아팠습니다. 한국 교회가 이젠 돈의 손아귀에서 제발 해방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에서 이 책이 탄생한 셈이죠. 이 책의 성격을 굳이 표현하자면 ‘맘몬숭배의 해독제’일 텐데, 그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Q. 부제가 ‘교묘한 맘몬 숭배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우리나라에 부자 교회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교회가 맘몬을 숭배하고 있다니, 충격적입니다. 한국 교회가 어떤 식으로 맘몬 숭배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까?
A. 사실 구약시대까지 포함하는 교회의 긴 역사를 살펴보면 슬프게도 교회가 우상숭배에 빠지는 건 그렇게 해괴하거나 낯선 현상이 아닙니다. 애굽에서 해방되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한 지 얼마 안 돼서 히브리 백성은 금송아지를 만들었죠. 그러곤 그 금송아지가 바로 자신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낸 신이라고 고백합니다. 금송아지 앞에 제사를 드린 후 열광적인 축제를 즐기면서 그날을 감히 여호와의 절기라고 명명합니다. 예레미야 시대엔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놓곤 그곳이 바로 여호와의 집이라고 힘껏 외치며 구원의 기쁨을 노래하죠.
교회의 맘몬숭배도 꼭 마찬가지입니다. 맘몬은 자기를 추종하는 자에게 참된 의미에서의 윤리적 요구를 하지 않죠. 다만 마음만 먹으면 자기 노력으로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몇 가지 법칙을 제시할 뿐입니다. 긍정적 사고, 열정, 피해야 할 금기 등 말입니다. 이런 것들만 잘 준수하면 누구든지 경제적 번영을 반드시 누릴 수 있다고 약속합니다. 인간의 탐욕에 딱 들어맞는 존재입니다. 그런 맘몬을 성경과 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면서 그를 중심으로 몇 가지 종교적 행위들을 수행하고 축제를 벌이는 것, 그것이 바로 맘몬숭배입니다. 맘몬숭배의 핵심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탐욕을 정당화하려는 자기기만입니다. 인간이 이렇게 쉽게 스스로에게 속는 것은 하나님의 인정도 받고 경제적 번영도 누리는 것이야말로 인간본성에 가장 매력적인 것이기 때문이겠죠.

Q. 대형화된 교회가 맘몬 숭배에 더 취약하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맘몬 숭배는 교회의 크기와 무관하게 나타나는 현상입니까?
A. 《메가처치 논박》의 저자인 신광은 목사의 말이 생각나네요. ‘한국 교회에는 두 종류의 교회가 있다. 하나는 메가처치, 다른 하나는 메가처치가 되고 싶어 하는 교회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맘몬숭배는 교회의 크기와 무관하다 할 것입니다. 작음 자체가 교회를 맘몬숭배로부터 자동적으로 보호해줄 수는 없는 거죠. 다만 굳이 차이를 들자면 대형교회는 맘몬숭배를 하더라도 대규모로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만큼 국교회와 사회에 미치는 폐해가 더 크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건강한 작은 교회를 적극적으로 지향하면 맘몬숭배의 유혹에서 훨씬 더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맘몬숭배는 크고자 하는 탐욕을 타고 교회 속으로 잠입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Q. 그러고 보면 『돈에서 해방된 교회』라는 제목은 한국 교회의 현실이라기보다는 지향점을 나타내는 표현인 듯합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말고) 역사적으로 실제로 『돈에서 해방된 교회』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근접한 모델이라도 실재했던(혹은 실재하는) 예가 있습니까?
A. 맞습니다. 한국 교회에 대한 간절한 바람과 희망을 담고 있는 제목이죠. 그래서 저는 표지가 밝은 하늘색 바탕인 게 참 마음에 듭니다. 제가 교회사를 전공하지 않아서 초대교회에 버금갈 정도로 돈에서 해방된 교회의 구체적 예를 찾는 것이 쉽지 않네요. 기독교가 주후 313년 콘스탄티누스 로마 황제에 의해 공인되기 전까지 교회는 대체적으로 돈에서 해방된 상태를 잘 유지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후로는 주류 교회보다는 교회개혁을 간절히 추구해온 비주류 교회에서 더 많이 찾을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오늘날 미국의 경우 고든 코스비의 세이비어 교회, 짐 월리스의 소저너스, 세인 클레어본의 심플웨이 공동체 등을 들 수 있고, 한국의 경우 예수마을공동체를 비롯한 다양한 공동체 교회들을 들 수 있겠죠.
물론 이 세상에는 완전한 교회란 존재할 수 없지요. 심지어 예루살렘 초대교회에도 돈에 대한 탐욕과 경건에 대한 갈망을 동시에 만족시키려다 비극적 결말을 맞은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이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중요한 것은 말씀한 것처럼 지향점을 놓치지 않는 겁니다. 예수님 역시 하나님의 완전을 그리스도인의 지향점으로 제시하셨지요(마 5:48). 이 세상에서 100퍼센트 실현할 수 없다고 해서 지향점 자체를 낮추는 건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율법주의, 형식주의, 그리고 자기 의라는 함정에 빠지게 되죠. 완전한 지향점을 언제나 가슴에 품고 살아갈 때, 겸손하게 주님의 은혜를 더욱 의지하며 그 힘으로 살아갈 수 있지요.

Q. 맘몬이 자본주의의 등 뒤에 숨어 교회 안에 들어와 교회를 뒤틀고 있다고 하셨는데, 맘몬과 자본주의는 정확히 어떤 관계인지요?
A. 맘몬은 돈의 힘으로 인간을 유혹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드는 영적 존재를 가리킵니다. 맘몬은 예수님께서 구체적으로 지목해내심으로 그 정체가 밝히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자본주의란 맘몬과 아주 친화적인 가치, 그 가치를 정당화하는 이념, 그리고 그 가치와 이념을 특정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정치경제 체제를 통틀어서 규정하는 단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맘몬은 인간과 사회로부터 독립된 영적 존재이고, 자본주의란 인간과 사회가 그 맘몬과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결탁하여 만들어낸 역사적 산물이라 할 수 있겠죠.

 
Q. ‘자본주의 4.0’ 논의에서 보듯,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자본주의 시스템을 손보려는 시도가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본주의는 고쳐 쓸 수 없을 만큼 결함이 많은 시스템이니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목사님의 입장은 어떠신지요?
A. 저는 궁극적으로 자본주의는 폐기되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즉, 자본의 사적소유, 노동의 상품화와 그에 따른 사회적 분업, 냉혹하고 불의한 경쟁시장을 통한 자원의 배분 등은 사라져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는 혁명을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혁명이 당장에 불가능한 상황에선 차선의 길을 가는 이들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온전한 해결책은 되지 않는다 해도 현재보다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감으로써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저는 경제민주화의 이름으로 자본주의 사회를 규제하고 개선해나가고자 하는 다양한 정책들과 운동들을 적극 지지합니다.
다만 저는 그런 운동들이 결국에는 자본주의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전락되지 않고 자본주의 자체를 극복해나가는 디딤돌이 되길 바랍니다. 그러려면 누군가는 자본주의 폐기론을 줄기차게 외쳐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아주 외롭고 춥고 배고프겠죠. 하지만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런 점에서 개혁노선과 혁명노선은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겸손하고 건강한 분업정신을 발휘해서 서로 존중하면서 은사와 성향에 따라 각자의 길을 충실하게 걸어갔으면 합니다.
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자본주의의 심각한 문제점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는 하나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병폐를 극복해나가는 방안에 대해서는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때로는 선의의 경쟁을 하고 때론 협력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면 합니다.

Q. 크리스천 기업인이나 투자자들에게는 이 책이 불편한 주장을 담은 책으로 보일 수 있겠습니다. 특별히 그분들에게 해주고픈 말씀은 무엇입니까?
A. 좋은 질문입니다. 우선 지나친 완벽주의 혹은 순결주의에 지나치게 시달리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생존하고 있는 한 일정한 타협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아미시 같은 공동체에서 산다고 해도 미국이라는 자본주의 사회가 베푸는 혜택을 일정 정도 받으며 살아갑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의 헌금으로 사는데요, 그 헌금은 성도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땀 흘리며 힘겹게 번 돈입니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 양보할 수 없는 마지막 선을 그어놓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선은 각자의 형편, 성향, 은사, 직업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미션〉이란 영화를 좋아하는데요, 총을 거부하고 순교의 길을 택한 신부(제러미 아이언스)와 총을 들고 억압자에 저항하다 죽는 신부(로버트 드니로)가 서로 존중하는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고민하고 깊이 기도하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셋째, 타협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게 만드는 부당한 정치경제 체제를 바꿔나가는 일에 어떤 모양으로든지 동참하길 권유드리고 싶습니다. 그 모양 역시 각자의 진실한 고민과 기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다양성을 존중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시민단체에 후원금을 제공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직접 다양한 집회에 참여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정치인 혹은 시민운동가를 사적으로 격려하거나 공개적으로 지지할 수 있겠죠. 어떤 모양새를 취하든 목표가 같으면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존중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Q. 양심적으로 돈을 벌어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일정 부분을 떼어놓은 뒤 자신의 몫을 누리는 ‘깨끗한 부자’보다는 이웃과 함께 누리기 전까진 부를 차마 누릴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자발적으로 가난을 택하는 ‘복음적 가난’이 더 그리스도인다운 선택이라고 보고 계십니다. 목사님 가족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을 입장인데, 충분한 지지를 얻고 계시는지요?
A. 저는 종종 제 생활수준이 상대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가끔 점검해봅니다. 최근에 ‘나는 얼마나 부자인가(How Rich Am I)’라는 사이트(http://www.givingwhatwecan.org/get-involved/how-rich-am-i)에 들어가서 제 연봉과 가족 수를 입력했더니 전 세계인구 중 상위 14퍼센트 안에 들어가고 세계평균 수입의 7.1배라고 나오더군요. 세계 인구를 100명으로 축소시키면 상위 14명 안에 들어가는 겁니다. 엄청나게 잘사는 부자인 셈이죠. 2013년 3사분기 한국 전체 가구당 월 평균소득 수준으로 보니까 제 가족이 중간 혹은 살짝 그 아래쯤 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도 잘사는 셈이죠. 그래서 저는 제가 가난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다만 저와 비슷한 여건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난하게 살려고 노력하고는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에 대해 저는 충분한 지지를 받다 못해 때로는 아내로부터 도전을 받습니다. 정말 글 쓰고 가르치는 대로 실천하고 있느냐고 말입니다. 복 받은 사람이죠. 물론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한번은, 한 13년 정도 된 것 같은데요, 제가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두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아빠가 새 길을 가야겠는데, 아무래도 노숙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 너희들은 엄마하고 잘 살아야 한다.” 당시 큰 딸은 중학생, 작은 아들은 초등학생이었어요. 딸은 그래도 빨리 동의해주었는데, 아들은 대단했지요. “아빠는 집을 나가도 나는 이 집을 절대로 안 떠날 거예요!” 울면서 이러는 것 아니겠습니까? 당시 22평쯤 되는 허름한 아파트인 교회 사택에서 살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러더니 며칠 지나서 마음을 고쳐먹더라고요. 너무 고마웠습니다. 다행히 정말 노숙할 필요는 없었지만, 저는 그때 작은 승리를 경험했습니다.

Q. 맘몬 숭배가 한국 교회의 근본적인 문제이므로, 이를 바로잡는 원인 요법이 필요하다고 보고 계십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면 한국 교회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요?
A. ‘대부분’이라는 표현에 동의합니다. 맘몬숭배 척결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맘몬숭배로 환원되지 않는 문제들도 교회 안에 있습니다. 예컨대 교회 내 목회자에 의한 성폭력이나 불륜은 단순히 맘몬숭배 문제는 아니겠죠. 하지만 책에서 보여주려고 노력했듯이 한국 교회 대부분의 문제는 맘몬숭배에서 비롯된다는 확신엔 변함이 없습니다.

Q. 책 제목처럼 정말로 교회가 돈에서 해방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그 점은 책을 직접 읽으면 명확해질 거라고 생각됩니다. 다시 하나만 강조하자면 구원의 기쁨을 회복해야 합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찬송이 있습니다. 수년 전 제 아내에게 “여보,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면 임종할 때 이 찬양을 꼭 불러주구려” 하고 부탁한 찬송입니다. 찬송가 85장인데, 특히 1절을 좋아합니다. ‘구주를 생각만 해도 이렇게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이 노래를 뜨거운 기쁨과 눈물로 부를 수 있는 한, 맘몬은 우리를 자기 손아귀에 넣을 수 없을 것입니다.

Q. 좋든 싫든 오늘의 젊은 세대들은 자본주의 세상만을 경험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비교적 경제적 풍요를 누렸지만, 치열한 경쟁에 지쳐가는 것도 같습니다. 앞으로는 저성장 시대가 계속될 것으로 예견되고, 오늘의 젊은이들은 이전 세대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가 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A. 때때로 눈을 감고 아무것도 보지 마십시오. 때때로 귀를 막고 아무것도 듣지 마십시오. 그리고 조용히 정말 조용히 주님의 얼굴만을 그리워하십시오. 그리고 그분의 음성만을 갈망하십시오. 그분의 얼굴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분의 음성이 세밀하게 들리기 시작하면 그분의 손을 꼭 붙잡으십시오. 그분이 이끄는 대로만 따라가십시오. 옆에 친구와 동지가 많으면 금상첨화겠지만, 혼자라도 결코 두려워하지 말고 따라가십시오. 그분이 여러분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주셔서, 아는 사람만이 아는 행복과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 자료제공 : 포이에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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