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토피아 고천주 기자]대법원은 형편이 어려운 상황이 드러난 기록이 있음에도 피고인의 국선 변호사 선정 요청을 기각하고 벌금형을 선고한 2심 판결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정보통신망법 위반과 협박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3일 밝혔다.
대법은 "피고인은 국선변호인 선정 청구 당시 '빈곤 그 밖의 사유로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는 경우'에 관한 소명자료를 제출하지는 않았지만 1심에서 이미 자신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수급권자에 해당한다는 자료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이어 "기록상 '현재의 가정 형편상 개인적으로 사선변호인을 선임하기 어렵다'는 점에 관한 소명이 있다고 인정된다"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국선변호인 선정 결정을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IT업체를 운영해온 A씨는 2015년 B씨의 업체와 경영권 인수 계약을 체결하고 회사를 합병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계약 당시 약속한 1억원을 받지 못했다며 민사소송 분쟁 중인 B씨에게 174회에 걸쳐 공포심·불안감을 일으키는 메시지를 전송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왔다.
이에 1심은 A 씨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보고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2심은 A 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메시지의 내용과 횟수, 피해자가 입었을 정신적 고통을 고려하면 책임을 엄중히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양형 사유를 밝혔다.
그러나 대법원은 A씨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다며 2심 유죄 판단이 위법하다고 봤다. A씨는 1심에서 국선 변호인의 변호를 받았지만, 2심에서는 재판이 시작된 뒤 국선 변호인 선정 청구를 했음에도 법원의 기각으로 변호인 없이 재판을 받았다. 자신이 변호인을 선임하기에 곤란한 상황임이 소명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형사소송규칙에 따르면 법원은 피고인이 빈곤 등 사유로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어 국선변호인 선정을 청구하면 받아들여야 한다. 피고인이 소명 자료를 제출하는 게 원칙이지만 기록으로 사유가 소명됐다면 국선변호인 선정이 가능하다는 단서도 있다.
대법원은 "2심에서 소명자료를 제출하지 않았으나, 1심에서 이미 A씨는 자신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수급권자에 해당한다는 소명자료를 제출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법은 원심이 국선변호인 선정에 관한 형사소송법 규정을 위반했다고 보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서울남부지방법원에 돌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