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토피아 정인옥 기자]집주인이 임차보증금을 돌려주겠다고 속여 전세보증금 전액을 돌려주지 않은 상태에서 오피스텔의 점유권을 세입자에게서 받았더라도 사기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0일 밝혔다.
A씨는 세입자 B씨에게 오피스텔 임차보증금 1억2천만원을 돌려줄 수 없는데도 "일단 5천만원을 송금해주고 7천만원은 다음에 송금해주겠다"고 속여 점유권을 받은 혐의를 받는다.
세입자는 임차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자 짐을 빼고 비밀번호를 바꿨는데 A씨는 "새 임차인이 이사를 오기로 했다"며 보증금 가운데 일부만 보내주고 바뀐 비밀번호를 얻어냈다. 그러나 B씨의 거듭된 요청에도 임대차보증금 잔금 5000만원은 계속 반환하지 않았다.
A씨는 법원의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에도 잔금을 지급하지 않았고 결국 B씨에 대한 오피스텔 점유권을 편취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과 2심은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는 임차목적물인 오피스텔의 반환을 거절해 계속 점유할 권리가 있는데도 피고인의 기망행위에 속아 피고인에게 점유를 이전했기 때문에 사기죄의 재산상 처분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해자가 피고인으로부터 임차한 오피스텔을 점유해 이를 사용·수익하다가 추후 나머지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하겠다는 피고인의 말에 속아 잔금을 반환받지 않고 오피스텔의 점유권을 이전했더라도 사기죄에서 재산상의 이익을 처분했다고 볼 수 없다"며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피고인이 피해자의 점유권을 편취했다는 사기 부분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 판단에는 사기죄의 성립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했다.
사기죄는 기본적으로 '타인의 재물과 재산상의 이익'을 속여 갈취하는 범죄다. 이때 특정한 재물을 점유하면서 뒤따르는 사용권과 수익권은 재물과 별개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다.
A씨는 별도의 부동산·사모펀드 투자 사기 범죄로도 함께 기소돼 1·2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이 전체 판결을 파기함에 따라 파기환송심에서 새롭게 형량을 정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