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수유동에 사는 오재영(43·가명) 씨. 프리랜서 웹 디자이너인 그는 지난해 창업을 위해 집 근처 저축은행을 찾아 2천만원의 창업자금을 대출받으려 했다. 3년 전 직장을 그만둔 후 신용카드 결제대금을 몇 번 연체한 탓에 신용등급이 낮아져 금리는 높아도 대출이 가능한 제2금융권을 찾게 된 것이다.
저축은행 직원은 오 씨에게 서민금융상품인 ‘햇살론’을 소개하며 12퍼센트의 금리로 창업대출이 가능하다고 하면서 대출에 전혀 문제 될 점이 없다고 덧붙였다. 오 씨는 대출이 가능하다는 말에 더 낮은 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는 상품은 없는지 궁금해졌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자신과 같은 신용등급으로 9퍼센트 금리의 창업대출을 받았다는 후기를 읽고 망설임 없이 바로 그 은행을 찾았다.
하지만 대출 상담을 받고는 이내 실망을 했다. 집 근처 저축은행과는 다른 조건 탓(보유자산 1억5천만원 이상)에 대출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오 씨는 어쩔 수 없이 처음 상담한 저축은행에서 조금 높은 금리로 대출을 받았다.
올해부터는 정부가 서민금융상품 개선안을 만들어 오 씨처럼 은행에 따라 대출을 못 받는다거나 금리 차이로 인해 발품을 팔지 않아도 된다.
복잡한 대출 조건, 하나로 통일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2월 27일 ‘서민금융상품 지원 기준에 대한 개선안’을 발표했다. 그동안 서민금융상품을 취급하는 조건이나 기준이 접수 은행에 따라 서로 달라 불편한 점을 개선한 것이다. 이번 개선안은 서민금융대출의 지원조건 통일, 미소금융 성실 상환자에 대한 신용평가 가산점 부여, 보건복지부 사회보장정보시스템과의 연계 사업 등을 담고 있다.
이번 개선안에서 눈여겨볼 만한 것은 햇살론과 바꿔드림론, 새희망홀씨의 대출 지원기준을 통일한 점이다. 그간 햇살론과 새희망홀씨, 바꿔드림론은 각기 요구하는 신용등급과 대출 수요자의 연소득 기준이 달랐다. 오 씨처럼 낮은 이율의 상품이 있음에도 지원을 받지 못해 다른 금융기관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한 이유다. 개선된 대출 신청기준은 신용등급 6등급 이하, 연소득 3천만원 이하로 통일됐다. 금리도 연 8~14퍼센트에서 연 8~12퍼센트로 조정되며 각 상품의 취급기관은 변동이 없다.
햇살론의 지속적인 운영을 위해 보증비율이 95퍼센트에서 90퍼센트로 낮아진다. 보증비율이란 대출자가 상환을 못할 경우 다른 보증기관에서 대신 그 빚을 부담하는 범위를 말한다.
금융위원회 서민금융과 권유이 사무관은 “보증비율 하락은 저축은행권의 부담을 크게 해 상환능력 심사가 까다로워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그만큼 건전 재원을 많이 확보함에 따라 상환능력이 보장되는 근로자의 경우 더 쉽고 지속적인 대출이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미소금융 성실 상환자를 대상으로 신용등급 평가 시 가산점을 주는 방안도 시행된다. 개선안이 본격적으로 적용되는 오는 21일부터는 최근 1년간 연체일수가 20일 이하이며 미소금융과 타 은행권에 연체 정보만 없다면 바로 가산점이 더해진다.
금융위는 이로 인해 약 1만9천여 명이 가산점을 받으며 1천명 안팎은 즉시 신용등급이 한 단계 상승할 것으로 내다본다.
서민금융·사회보장정보시스템 연계 시범운영
서민금융지원과 복지지원을 연계하는 협업도 기대된다. 보건복지부에서 운영하는 사회보장정보시스템과 서민금융기관의 연계가 바로 그것이다.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은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중복 지원을 방지하고 원활한 복지업무처리를 지원하는 전산 시스템이다. 이번 협업에 대해 복지부 복지정보통합관리추진단 안명희 사무관은 “서민금융기관의 금융구제와 복지부의 자활지원서비스가 원스톱으로 이뤄지는 것”이라며 “저축은행권을 찾은 사람에게 지자체의 도움이 필요하다 생각하면, 이를 시스템에 등록해 지자체 복지 담당자에게 직접 연결해 주는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작업 중 골절상을 입은 일용직 노동자가 치료비와 생활비가 부족해 서민금융종합지원센터를 찾았을 때 대출은 물론 간병인, 의료 물품 등 지자체에서 도와줄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까지 한곳에서 접수가 가능해진다. 이를 통해 상담자가 양쪽을 다 찾아가야 하는 불편함이 사라지게 된다. 전국 17개 서민금융종합센터 중 경기 의정부·대구·인천센터에서 1월부터 시범운영 중이며, 나머지 지역에서도 상반기 내로 시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