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군의 관여와 강제성을 최소한이나마 인정한 고노담화를 둘러싸고 일본정부는 지난 5월, 이의 작성경위를 검증하는 지식인팀을 출범시켰고, 이에 따라 6월 20일 검증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검증팀은 고조담화 문언조율 시에 1)한국정부와 어떤 조정이 있었는지, 2)한국측의 어떤 요구를 받아들였는지, 3)한일정부간에서 어떤 공통인식이 있었는지 등을 검증하고, 보고서에는 한일 양정부가 물밑에서 문언을 조율한 경위를 담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담화 자체에 대한 검증이나 재검토는 하지 않겠다면서도 담화 작성 경위를 굳이 밝혀내겠다는 의도 자체가 불순한 것일 수밖에 없다. 당시 한국정부와 조율이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며 결국 고노담화가 한일간 정치타결의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내세우고 싶은 뻔한 속내를 드러내는 꼴이다.
이번 검증을 밀어붙인 경위야말로 일본정부와 우익세력 및 우익 언론의 짜인 각본에 지나지 않는다. ‘위안부’ 망언의 선두주자로 자리잡은 하시모토를 대표로 하는 일본유신회가 국회 질의에 이어 ‘역사문제검증프로젝트팀’을 가동시키는가 싶더니 ‘고노담화’의 철회를 요구하는 서명을 모아 일본정부에 제출했다. 이 즈음부터 산케이 신문을 비롯한 우익 언론들이 원칙적으로 공개하지 않기로 했던 한국 피해자 16명의 녹취 내용을 보도하는 등 ‘선동’에 가까운 여론몰이를 시작했다. 이미 2012년 자민당 대표 선거 때부터 “고노 담화의 핵심인 강제연행을 증명하는 자료는 없었다. 새로운 담화를 발표해야 한다”는 둥 ‘위안부’ 문제와 역사인식에 있어 심각한 퇴보를 몸소 보여줬던 아베 정권은 때를 기다렸다는 듯 본격적인 검증 작업에 돌입했다. 죽이 잘 맞은 합작의 뻔한 결과물이 곧 ‘검증’이라는 허울좋은 이름을 내걸고 공개되기에 이른 것이다.
일본정부가 끝내 이번 검증을 밀어붙이고 그 결과의 제출을 통해 고노담화가 한일간 정치 타결에 따른 결과물일 뿐임을 공식화한다면, 고노담화에서 인정한 일본군의 관여와 강제성 인정마저 스스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취한 노력의 결과가 아닌 등 떠밀려 내뱉은 외교적 수사였음을 자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일본정부로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압박하고 있는 한국정부를 상대로 입막음의 구실을 만들겠다는 얕은 수가 깔려있겠지만 그야말로 자승자박으로 귀결되고 말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고노담화와 국민기금을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일본정부의 성의있는 조치로 내세워 온 일본정부가 그 최소한의 책임 인정마저 자의가 아닌 정치적 합의에 따른 것이었다고 자인하는 꼴이니 우스운 모양새다. 더욱이 아시아 태평양 각지에서 조직적으로 자행한 ‘위안부’ 범죄에 대해 그 전반의 책임은 뒤로 한 채 한일간의 문제인 것 마냥 축소시킨 경위를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한국에서 실시한 녹취 조사를 동남아시아 피해국에서는 회피하며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의 일본대사관에서 실시하지 않도록 방침을 통보한 것도 일본 언론 보도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위안부’ 문제를 한일간의 갈등 사안으로 축소시키며 정치화하는 일본정부의 변치 않는 작태가 보다 큰 피해국의 분노와 국제사회의 비판에 직면할 것은 앞으로 정해진 수순이나 다름없다.
누차 강조하지만 고노담화는 그 자체로도 이미 불충분한 것이었다. ‘관여’ 수준에 머무른 책임 인정과 전체적인 범죄의 규모 및 피해상황 조차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내용상의 부실은 물론 담화에서 인정하고 약속한 내용마저 그 이행을 담보하지도 못했으며, 바로 지금의 상황이 말해주듯, 결국 담화 내용의 이행은커녕 번복으로 가고 있는 작금의 상황이다.
일본정부는 이제라도 고노담화에서 밝힌 대로 ‘모집, 이송, 관리 등’이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행해졌다’는 것과 ‘위안소의 생활’도 ‘강제적인 상황 하에서 이루어졌으므로 고통스러운 것이었다’는 점 등을 보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사실로 인정하고, ‘역사연구와 역사교육을 통하여 이러한 문제를 오래도록 기억에 새기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이행해 나가야만 한다.
또한 일본의 고노담화 철회와 검증 움직임으로 인해 당장 담화의 보존과 계승이 시급해진 형국이지만, 실상 일본정부가 할 일은 제 때 제대로 실시하지 못한 진상규명과 책임이행을 선결과제로 삼아 한국뿐 아니라 각 피해국에 대한 철저한 조사로 ‘위안부’ 범죄의 실상을 명확히 밝히고 그에 따른 법적 책임을 이행하는 것이다. 고노담화의 부족함을 채우고 그야말로 피해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올바른 문제해결로 나아가야만 한다.
지금 ‘검증’이 필요하다면, 고노담화에 대한 한일간 조율의 과정에 대해서가 아니라 일본정부가 저지른 반인도적 전시 여성폭력 범죄인 일본군 ’위안부’ 제도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왜 아직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지 스스로의 과오에 대한 엄정한 검증이 아니겠는가.
한국정부가 고노담화 작성 과정에 관여했는지 여부나 어떤 형태로 관여했는가에 상관없이 일본정부는 더 이상 일본군 ’위안부’ 범죄를 부정하거나 강제성 운운하며 책임을 축소하고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더 큰 역풍을 맞기 전에 어리석은 행보를 즉각 중단하고 상식과 정의의 길로 나아갈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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