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 별세... “평생 독재에 맞서 싸운 시대의 큰 어른”
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 별세... “평생 독재에 맞서 싸운 시대의 큰 어른”
  • 남희영 기자
  • 승인 2021.02.1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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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새벽 별세한 故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빈소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돼있다. ⓒ뉴시스
15일 새벽 별세한 故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빈소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돼있다. ⓒ뉴시스

 

[뉴스토피아 남희영 기자]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5일 별세했다. 향년 89세.

서울대병원 등에 따르면 백 소장은 지난해 1월 폐렴 증상으로 입원해 투병 생활을 이어오던 중 이날 오전 세상을 떠났다.

백 소장은 1932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났다. 1950년 6·25가 발발하자 부모·작은형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왔다. 백 소장은 1964년 한일회담 반대운동에 참여한 뒤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 시절 농민·빈민·통일·민주화운동 앞장서왔다.

백 소장은 젊은날 농민운동과 나무심기운동, 빈민운동에 힘썼고 1967년 고 장준하 선생과 함께 ‘백범사상연구소’를 세웠다. 이 연구소가 ‘통일문제연구소’의 모태였다. 1973년 유신헌법 철폐를 위한 개헌 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에 앞장섰고 민족통일민중운동연합 서울지부 의장, 전노협 고문 등을 지냈다.

이 과정에서 1974년 2월 긴급조치 1호의 첫 위반자로 1974년 3월 비상고등군법회의에서 징역 12년·자격정지 1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른 바 있다. 이후 2013년 8월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백 소장은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랫말의 모태가 된 장편시 '묏비나리'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1987년 대선에 민중후보로 출마했다가 야당의 후보 단일화·연립정부 구성을 촉구하며 사퇴했다. 1992년 대선에서 다시 민중후보로 나서 24만표를 얻었다.

이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재야에서 통일운동과 진보적 노동운동에 매진하는 동시에 90년대 후반부터 활발해진 시민운동 등에 동참해 왔다. 노구의 몸에도 그에게서 터져나오는 날카롭고 힘 있는 목소리는 끝날 줄 모르는 기나긴 싸움에 지쳐 있던 노동자와 농민, 시민들에게 큰 의지가 됐다. 평생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독재에 맞서 싸운 삶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보여준 이 시대의 큰 어른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백 소장은 지난해 1월 폐렴 증상으로 입원해 투병 생활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 발인은 19일 오전 7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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