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피아 = 김유위 기자] 8.15 광복절을 앞두고, 영화 <암살>(최동훈 감독)이 누적관객수 960만(14일 영화 진흥위)을 돌파하며 곧 천만 관객 영화에 입성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연일 흥행 돌풍을 이루고 있는 영화 암살의 등장인물들 역시 주목받고 있다.

암살에서 약산 김원봉役을 맡은 조승우는 영화에서 '카메오'로 등장해, 짧은 분량에도 적지 않은 존재감을 드러냈다. 실제 독립운동을 했던 인물 김원봉, 그는 누구인가.
약산 김원봉, 의열단 조직해 일제 수탈기관 파괴 등 '무정부주의적' 독립투쟁해

김원봉(1898 ~ 1958)의 호는 약산(若山)으로, 경남 밀양에서 출생했다. 1918년 난징(南京)의 진링(金陵)대학에 입학하고, 1919년 12월 의열단을 조직해 국내의 일제 수탈기관을 파괴, 요인암살 등 '무정부주의적' 투쟁을 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또한 김원봉은 1925년 황푸군관학교를 졸업하고, 1935년 조선민족혁명당을 지도하면서 본격적으로 중국 관내지역 민족해방운동을 주도했다. 이후 중국 국민당의 동의를 얻어 '조선의용대'라는 군사조직을 편성해 1942년 광복군 부사령관에 취임했다.
광복군 부사령관으로 활동하다 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위원 및 국무부장을 지내고, 8.15 광복 후에 귀국하였다. 이후 1948년 남북협상(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김구·김규식 등이 남북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평양으로 가서 북한 측 정치 지도자들과 협상한 일) 때 월북하여,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그 해 8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이 되었다. 또한 1957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나, 1958년 김일성 비판을 제기한 옌안파(延安派) 제거작업 때 같이 숙청당했다.
영화 <암살> 김원봉, 실제 항일무력투쟁 노선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김원봉'을 그대로 구현

김원봉은 난징의 진링대학에 입학하면서 중국에서 망명생활을 시작하고, 3.1 운동의 소식이 전해지자 귀국하는 김약수·이여성 등과 헤어져 길림을 거쳐 서간도에서 폭탄 제조법을 습득하는 등 일제와의 무장투쟁노선을 분명히 했다.
1919년 12월 윤세주·이성우·곽경·강세우 등과 의열단을 조직한 김원봉은 조선총독 및 총독부 고관, 군부 수뇌와 매국적 친일파 거두 등을 암살 계획을 세워 저격했다. 6년 여에 걸쳐서 의열단 단장으로 활동했던 김원봉은 대규모 암살 계획 및 경찰서나 동양척식주식회사(1908년 일제가 대한제국의 토지와 자원을 수탈할 목적으로 설치한 식민지 착취기관)등에폭탄 투척사건을 배후에서 지휘·조종해 일제와의 투쟁을 지속했다.
이는 영화 <암살>에서 김원봉이 추상옥(조진웅), 황덕삼(최덕문), 안옥윤(전지현)에게 암살지시를 내리는 장면에서, 실존했던 김원봉의 캐릭터를 그대로 구현한 것이라 생각된다. 다만 영화에서 김원봉이 김구 선생에게 가족의 안부를 묻는 등 '친밀한 사이'인 것처럼 보였던 장면은 가상의 장면이라 생각된다. 민족주의자였던 김구와 달리 김원봉은 무정부주의·사회주의 성향이 강했기 때문에 독립운동의 노선이 달랐기에 '친밀한 관계'는 아니였을 것이라 추측돼, 감독이 재구성한 장면이다.
[뉴스토피아 = 김유위 기자 / kyw@newstop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