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고 받는 ‘층간소음’
‘우리집 바닥은 아랫집의 천장이다?’
[뉴스토피아 = 남희영 기자] 세계보건기구(WHO)는 소음을 “기능 장애나 부가적 스트레스의 보상능력에 장애를 초래하거나, 환경요인의 유해한 영향에 대한 감수성을 증가시키는 생체의 형태와 생리 변화”로 정의하고 있다. 또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 소음의 크기는 주택의 거실에서 발생하는 소음의 정도인 40dB(A)이다. 소음은 개인의 성향이나 감수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지만 개인의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기능을 일시적 또는 장기적으로 저하시킬 수 있다.
가정이라는 중요한 공간에서 ‘층간소음’은 고통과 함께 삶의 질도 떨어뜨린다. 가장 심각한 환경오염원이 된 ‘층간소음’은 법제도적으로 층간소음에 취약한 건설기준과 공동체 관리규약의 실효성 미흡, 분쟁해결을 위한 법적관리기준의 부재로 발생되지만, 남을 배려하는 주거문화(행태)의 부재도 문제이다. 국민 대부분이 공동주택에서 살고 있지만 이웃을 배려하는 공동체 의식이 부족하여 층간소음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다. 이러한 층간소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무엇보다 층간소음을 주는 윗층 사람도 받는 아래층 사람도 모두 고통받고 있는 문제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피해자’는 윗집일까? 아랫집일까?
두돌이 지난 아들을 둔 주부 김씨(36)는 아이가 뛰어 다니기 시작하면서 하루하루가 스트레스였다. 경기 부천에 있는 A아파트 4층에서 거주하는 김씨 부부는 평소 조용한 성격인데다 아이도 아주 순한 편이다. 평소에 같은 아파트 주민들이 층간소음으로 분쟁이 있었던 터라 아래층에 살던 노부부에게 늘 양해를 구했었다.
다행히도 노부부는 이를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아이들이 그렇지, 뭐~’ 하며 웃어 넘겼다고 한다. 그러나 노부부가 이사를 가면서 새로 이사를 온 노모와 아들의 태도는 달랐다. 만날 때마다 아이가 뛰어다닌다며 투덜거렸고, 죄인이 된 김씨는 틈만 나면 음식이나 과일 등의 선물공세로 연신 고개를 숙여야했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아래층에서 천정을 두드리거나 올라와 아이에게 야단을 치는 등 가끔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였다.
얼마 전 아이와 함께 낮잠을 자던 김씨는 현관문을 발로 차고 초인종을 누르며 ‘시끄럽다. 더 이상은 못 참겠다’며 아래층 할머니가 거세게 항의를 하는 것을 보고 이사를 결심했다. 김씨 부부가 이사를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층간소음’으로 인한 갈등보다, 순하기만 한 아이에게 ‘뛰지마’라고 얘기해야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김씨 부부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무조건 1층에 살아야겠다’는 결심까지 했다고 한다.
과거 단독주택 위주의 생활에서 아파트 등 공동주택으로 주거 환경이 일반화되면서 ‘층간소음’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최근 층간소음으로 인한 살인 사건 등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이웃 간 분쟁과 피해를 줄이는 대책이 시급하다. 소음은 개인의 심리상태와 주위 환경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차이가 크다. 개인의 주관적인 감각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좋은 소리도 다른 사람에게는 소음처럼 들릴 수 있다. 낮과 밤, 주거지역과 상업지역 등의 차이에 의해 소음 기준은 달라지지만 일반적으로 50dB(A) 정도를 전후로 해서 그 이상의 음이 발생하면 소음으로 간주한다.
층간소음의 경우 주거환경에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주는 부분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보여 진다. 일단 ‘소음’ 자체가 불쾌하고 시끄러운 소리로 일정한 공간에서 반복적인 소음이 들린다면 고통을 주는 스트레스이다. 주거환경에서의 층간소음은 사람의 생활환경을 파괴하는 요인이 된다. 아파트 등의 공동 주택에서 주로 발생하는 층간소음은 식탁을 끄는 소리, 뛰어다니는 소리, 애완동물 소리, 화장실 물소리, 세탁기·TV소리, 다투는 소리, 내부공사로 인한 소음 등을 모두 포함한다.
김씨가 사는 아파트주민들도 모두 인정할 정도로 층간소음이 심한 편이었다. 그러나 전세가 더 많고 대부분 자녀를 둔 맞벌이부부로 갈등에 맞서거나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참거나 ‘이사가면 그만인데’라는 의견을 보였다. 김씨의 얘기만 들었을 때는 아래층 할머니가 악역처럼 보이지만 만약에 김씨를 상대로 층간 소음 피해를 신고했다면 소음기준에 따라 오히려 김씨가 배상을 해야 할 입장이었을지도 모른다.
정부가 공동주택 공동체가 자율적으로 층간소음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여 층간소음분쟁을 해결하도록 권고하고 있으나, 관리소장 및 입주자대표의 인식부족 등으로 실제 분쟁해결이 된 사례는 거의 없다. 이웃에게 피해를 주려고 일부러 소음을 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웃 간에 소음으로 인한 ‘보복심리’가 범죄로까지 이어지는 등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층간소음’. 특히 아이를 키우는 집은 김씨 부부처럼 가시방석일 수밖에 없다.
소음이 인체에 주는 영향
청각으로 느끼는 소음의 크기를 사례별 10단계 살펴보면 ▲20dB 시계초침, 나뭇잎 부딪치는 소리 ▲30dB 심야의 교외, 속삭이는 소리 ▲40dB 도서관, 주간의 조용한 주택 ▲50dB 조용한 사무실 ▲60dB 조용한 승용차, 보통 대화소리 ▲70dB 전화벨(0.5m), 시끄러운 사무실 ▲80dB지하철의 차내소음 ▲90dB 소음이 심한 공장 안, 큰소리의 독창 ▲100dB 열차 통과시 철도변 소음 ▲110dB 자동차의 경적소음 ▲120dB 전투기의 이착륙소음 등으로 구분된다.
수면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 35dB이하의 소음은 WHO 침실기준에 속한다. 국가소음정보시스템 자료정보에 따르면 40dB의 소음크기는 수면의 깊이가 낮아지며 60dB이 넘으면 일반적으로 수면장애에 지장을 주기 시작하는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50dB의 소음도 호흡·맥박수 증가·계산력 저하 등의 영향을 줄 수 있으며, 공사장 규제기준인 70dB은 TV·라디오 청취방해, 정신집중력 저하 및 말초혈관수축의 영향을 초래한다. 작업장내 기준인 80dB이 넘으면 청력장애, 90dB 이상은 난청증상, 소변량 증가 등의 영향을 끼친다.
층간소음의 범위와 기준은?
최근에는 층간소음을 차단하도록 지어진 아파트들이 많지만 전체 아파트의 85%를 차지하는 대부분의 벽식구조 아파트는 기둥 및 보를 사용하지 않아 실내소음이 벽을 타고 전해지는 구조적 문제를 가지고 있어 층간소음에 취약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택건설 등에 관한 규정에서 바닥두께(150~210mm) 또는 바닥충격음 기준(경량 58dB, 중량 50dB) 중 하나만 충족하면 됐으니, 당시에 지어진 주택은 소음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현재 층간소음은 신축공동주택의 경우 경량충격음 58dB, 중량충격음 50dB이하로 규정하고 있지만 화장실의 층간소음에는 이 같은 기준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채택해온 ‘층하배관시스템’은 윗집 화장실 오·배수관이 아랫집 천장에 설치되어 화장실의 ‘물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공동주택 층간소음의 범위와 기준에 관한 규칙’으로 소음의 종류를 규정하고 주·야간으로 기준을 나눠 정하고 있다. ‘공동주택 층간소음의 범위와 기준에 관한 규칙’에 의하면, ▲층간소음 중 직접충격소음(뛰거나 걷는 동작)의 1분간 등가소음도는 주간 43dB(A), 야간 38dB(A), 최고소음도는 주간 57dB(A), 야간52dB(A)이고, ▲공기전달 소음(텔레비전, 음향기기 등의 사용)의 5분간 등가소음도는 주간 45dB(A), 야간 40dB(A)이다. 다만, 주택법 제2조 제2호에 따른 공동주택으로서 건축법 제11조에 따라 건축허가를 받은 공동주택과 2005년 6월 30일 이전에 주택법 제16조에 따라 사업승인을 받은 공동주택의 직접충격 소음 기준에 대해서는 위 기준에 5dB(A)을 더한 값을 적용한다. WHO에 따르면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 소음의 크기는 주택의 거실에서 발생하는 소음의 정도인 40dB(A)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그 어떠한 소리도 소음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는 게 아닌가?
주는 윗층 사람, 받는 아래층 사람 ‘모두 고통’
폭력이나 살인 동기를 유발하는 ‘층간소음’이 심각한 사회문제인 반면 생명을 살리기도 한다. 지난해 평소 들리던 윗집 독거노인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아 112에 신고한 아래층 주민덕에 목숨을 구했던 경우도 있다. 층간 소음으로 인한 이러한 따뜻한 사연이 전해지는 것은 이웃에 대한 ‘배려’와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는 이웃을 생각하는 공동체 의식을 얼마나 갖고 있을까? 공동주택의 입주민을 위한 소음 저감을 제대로 시행하고 있는 미국, 독일 등 선진국의 경우는 공동주택에서 발생되는 모든 일의 권한이 관리소장에게 주어져 있는 반면, 국내는 입주자 대표나 동대표 등에게 그 권한이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는 층간소음 규제 항목에 필요한 안건을 제시하더라도 그 안을 시행하기에는 많은 절차와 시일이 걸리게 되며 책임에 대한 부담감이 크게 작용한다.
소음은 물리적인 현상으로 인해 발생한다. 이미 층간소음에 취약한 상태라면 물리적 현상을 줄이면 소음도 줄일 수 밖에 없다. 양말이나 실내화를 착용하거나 매트를 깔아 두는 노력으로도 소음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아이들이 있는 경우 지나치게 뛰지않도록 지도하고 밤늦은 시각 세탁기나 청소기, 운동기구, 악기 등의 사용을 자제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아파트 관리사무소, 120 다산콜센터, 서울시 층간소음 상담실 등 제3자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것도 해결방법이 된다고 조언한다. 층간소음을 주는 윗층 사람도 받는 아래층 사람도 모두 고통받고 있는 문제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뉴스토피아 = 남희영 기자 / nhy@newstop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