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욕망’의 민낯, 리허설 결과
‘더러운 욕망’의 민낯, 리허설 결과
  • 남희영 기자
  • 승인 2018.02.23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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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 드러난 연극계 ‘괴물’…'미투' 냉정한 성찰의 계기될까?

[뉴스토피아 = 남희영 기자] 이윤택 연극 연출가의 성추행이 지난 14일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폭로하며 처음 드러났다. 이에 이씨는 지난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자분들께 사죄드린다”면서도 피해 여성들이 주장한 성폭행 의혹에 대해서는 강하게 부인했다. 그러나 이씨의 변명에 실명 폭로가 잇따랐다. 극단 ‘나비꿈’의 이승비 대표는 임신과 낙태 사실까지 밝히고, 연극배우 김지현에 이어 JTBC 뉴스룸에 익명의 피해자로 인터뷰했던 연극배우 홍선주도 보다 못해 실명을 공개하는 등 폭로자만 10여명이다. 연희단거리패 전 단원 중 피해자는 더 있을 것이란 추측도 나오는 가운데 이씨를 폭로한 피해자들은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이제 침묵 속에서 커진 괴물들에 대한 전면 수사가 이어질까?

▲ '성추행 논란'에 휩싸인 이윤택 전 극단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성추행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편 한국극작가협회는 이 전 감독을 회원에서 제명한다고 지난 17일 입장을 냈다. 이와 함께 한국여성연극협회가 성명을 내는 등 각종 연극 단체에서도 이 전 감독 사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뉴시스

피해자들 더 분노하게 만든 ‘이윤택 기자회견’

'성추행 논란'에 휩싸인 이씨는 리허설을 거쳐 연습한대로 성추행 관련 기자회견을 했다.

그러나 ‘일방적인, 물리적인 성폭행이 아니었다’는 진정성없는 이씨의 변명에 이승비 대표는 “이씨의 기자 회견 생중계를 본 선·후배들이 사실과 다른 부분 좀 바로잡아 달라며 울면서 전화했다”며 연이어 추가 고발에 나섰고, 연출가인 오동식 씨는 자신의 SNS에 스승인 이씨를 고발하는 글을 올렸다.

오씨는 “이씨는 변호사에게 형량에 관해 물은 뒤 노래 가사를 만들 듯, 시를 쓰듯 사과문을 만들었다”며 “리허설까지 거쳤으며 불쌍한 표정도 연습했다”고 고발했다.

배우 홍씨는 최초 폭로자인 김소희 대표가 이씨를 안마할 사람을 직접 초이스 했고 이에 항의하는 자신에게 “왜 이렇게 이기적으로 구느냐. 그까짓 일로 그러냐”며 부역자 노릇을 했다고 폭로했다. 이에 김 대표는 매체 인터뷰를 통해 “그 당시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이 잘 안 나서 실수가 벌어졌다”며 “당시 홍선주 씨에게 상처를 준일에 대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고 밝혔다.

한편 19일 오전 부산 동구는 초량동 초량초등학교 옆 초량 이바구길에 있었던 이윤택 연출가의 동판을 철거했다. 동판에는 부산 초량초등학교 출신인 이씨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사진과 함께 ‘시나리오, TV, 드라마, 신문 칼럼을 쓰고 무용 이벤트 연출도 겸하는 전방위 연출가’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폭력적 관행에 무감했다 반성"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전 예술감독, 오태석 극단 목화 레퍼토리 컴퍼니 대표 등이 잇따라 성추문에 휩쓸인 가운데 한국연극평론가협회가 입장문을 발표했다.

한국연극평론가협회는 21일 성명을 내고 "연극계 성폭력 사태에 경악과 분노를 느낀다"며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었던 폭력적 관행에 무감했던 점, 피해자들의 상처와 불이익에 무지했던 점, 작품의 결과만을 평가하고 제작현장의 비윤리적 행태에 둔감했던 점을 반성한다"고 했다.

또한 "비평의 펜이 비판과 견제의 역할을 방기한 채 결과적으로 가해자의 편에 선 꼴이 됐다"면서 "참담한 심정으로 이를 되돌아본다"며 이번 사태에 대해 성범죄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연극계에 만연한 위계폭력과 무관하지 않다고 봤다.

이어 협회는 "학교와 극단 내 스승과 제자, 선후배, 젠더 간의 뿌리 깊은 위계 문화가 가해자들의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키고, 자신의 폭력적 행동을 정당화하는 바탕이 됐다"면서 “연극계에서 이러한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냉정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협회는 "이번 성폭력 사태는 특정 인물이나 극단에 국한되지 않은 연극계 전체, 더 나아가 예술계 전반의 문제이며 일회적이거나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다"면서 "이 사태의 구조적 문제를 제대로 드러내어 근본적인 변화를 이룰 수 있도록 공론화에 앞장서겠다"고 덧붙였다.

앞서 한국극작가협회는 이 전 감독을 회원에서 제명한다고 지난 17일 입장을 냈다. 이와 함께 한국여성연극협회가 성명을 내는 등 각종 연극 단체에서도 이 전 감독 사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더러운 욕망’을 가진 괴물이 ‘권력’과 만나

▲ ⓒ123RF

권력을 이용한 욕망은 다양하다. 어떤 권력은 부정한 돈을, 어떤 권력은 부정한 노동을, 어떤 권력은 부정한 추행을 저지른다. 대부분 드러나지 않았을 뿐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권력을 가진 이들의 행위에도 암묵적 동조로 지켜보거나 모른 척 등을 돌리고 있을지 모른다.

특히 성폭력은 상하관계의 권력으로 은폐되거나 축소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지현 검사의 용기있는 결단으로 ‘미투(Me Too)’가 정계, 재계로 번지면서 최근 문화예술계를 중심으로 폭로가 잇따르고 있다. 맨 처음 ‘괴물’로 불린 고은 시인, 동성의 영화감독 이현주, 배우이자 교수인 조민기 등 권력관계를 이용한 추행을 저질렀음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권력은 매우 큰 능력이다. 그리고 괴물의 끝은 대부분 비참하다. 그렇게 힘들게 이뤄냈을 권력이라는 능력으로 왜 괴물이 될까? 권력의 맛을 본 괴물은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을 비롯해 권력의 괴물들이 하나둘씩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괴물의 민낯이 드러나면 아무리 억울하다 발버둥을 칠수록 민심은 분노할 뿐이라는 게 증명되고 있다.

괴물은 절대로 권력의 맛을 볼 수 없게 해야 하겠지만, 권력의 맛에 취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괴물로 변하게 되더라도 이번 사건처럼 등을 돌릴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부정한 욕망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피해자들은 한 목소리로 침묵과 방관이 더 무섭다고 말한다. 결국 괴물을 키운 것은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 최영미 시인의 ‘괴물’이라는 시 마지막 구절이 떠오른다.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


[뉴스토피아 = 남희영 기자 / nhy@newstop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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