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모친 조마리아 여사 ‘7월의 독립운동가’ 선정
안중근 의사 모친 조마리아 여사 ‘7월의 독립운동가’ 선정
  • 남희영 기자
  • 승인 2017.06.30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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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마리아(趙姓女/ 1862. 4. 8. ~ 1927. 7. 15.)
ⓒ국가보훈처

[뉴스토피아 = 남희영 기자]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 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는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것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거라.”

이는 조마리아(趙姓女, 1862~1927) 여사가 1910년 3월 26일 의롭게 세상을 떠난 안중근 의사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 내용이다.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조마리아 여사를 2017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여사는 1862년 황해도 해주군에서 배천 조씨 조선의 3남 2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나 같은 지역의 안태훈과 혼인해 슬하에 안중근, 안성녀, 안정근, 안공근 등 3남 1녀를 낳았다.

1897년 여사는 남편의 권유에 따라 뮈텔 주교로부터 영세를 받았고, 이후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일생을 살았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져가던 때, 1남 안중근은 국채보상기성회 관서지부를 개설하였고, 여사 또한 국채보상 의연금을 기부했다.

또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은 한국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다. 이 의거는 국내외 각지에서 반일운동을 벌이던 한인들에게 큰 찬양을 받았고, 나아가 서구 열강이 주목한 국제적인 사건이었다.

1910년 5월 이후 조마리아는 안중근의 장녀이자 자신의 손녀딸 안현생을 명동성당 수녀원의 프랑스인 수녀에게 맡긴 뒤 자신도 안정근·공근 두 아들을 따라 연해주로 망명하였다.

1922년 여사는 상해로 이주하여 2남 안정근과 함께 지내면서 임시정부를 재정적으로 후원하기 위해 ‘임시정부경제후원회’를 창립하고 위원으로서 임시정부 후원활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여사는 1927년 7월 15일 위암으로 인해 66세를 일기로 서거하였고, 정부는 2008년 조마리아 여사의 독립운동 공로를 인정하여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뉴스토피아 = 남희영 기자 / nhy@newstop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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